티스토리 뷰

반응형

주빌리은행과 그라민은행

 

소외계층의 자활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 대패한 조조가 후퇴하던 중에 기인을 한 명 만납니다.

 

실의에 빠져 있던 병사들에게 조조가 재기의 가능성을 역설할 때

한 사람만이 코를 골면서 잠을 청하고 있었지요.

 

그가 바로 조조의 책사가 되는 사마의입니다.

 

사마중달로도 잘 알려저 있는 이 인물은 후에 조조가 죽고나서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지요.

 

 

제갈공명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던 사마중달은 중국의 통일을 놓고 팽팽한 승부를 이어갑니다.

 

마침내 오장원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사마중달은

제갈공명이 죽었음을 확신하고 전군을 앞세워 적진을 향해 돌진해갑니다.

 

이 때 죽음을 예견한 제갈공명은 강유라는 장수에게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형을 준비해

마지막 전투에 대비하라고 유언을 남기지요.

 

 

죽은 줄 알았던 제갈공명이 멀쩡히 살아있다고 판단한 사마중달은 끝내 퇴각하게 됩니다.

 

나중에서야 제갈공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안 사마중달은

"나는 죽어서도 공명을 이기지 못하겠구나"라며 깊은 탄식을 남겼다고 합니다.

 

참고로, 길고 길었던 전쟁은 사마의의 손자가 천하를 통일하면서 끝나지요.

 

 

삼국지에 나오는 두 지략가에 관한 일화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죽은 공명이 살아 있는 중달을 쫓아냈다'며

전략의 천재인 제갈공명을 기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우리의 현실로 가져와 조금 다른 면에서 살펴볼까 합니다.

 

 

현실에서 죽은 존재가 살아있는 존재를 쫓아내는 일이 있을까요?

 

얼마 전에 제가 접한 이야기는

죽은 존재가 살아있는 사람을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거의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장기연체 채무자의 채권과,

그 빚 때문에 몹시 시달리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0억 내기' 프로축구 경기

 

 

 

성남시장이 서울시장에게 내기를 건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른바 '10억 대전' 또는 '빌리언 대전'으로 불린 이 제안은 FC성남과 FC서울 간의 경기에서

10억 원의 100분의 1인 천만 원을 조달해 '어떤 일'을 같이 진행하자는 내용입니다.

 

갚을 능력이 없어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은 시중에서 원금의 1%에 팔리지만

채무자에겐 여전히 '귀신보다 무서운 빚'이라는 것이 성남시장의 제안 배경입니다.

 

 

우선 성남이 진다면 장기연체 채무자의 빛 10억 원을 매입해 탕감하겠다고 조건을 내걸었죠.

 

대신에 서울이 게임에서 지게 되면 장기연체채무 5억 원을

서울시가 입장료 수입에서 조달해 달라고 한 거죠.

 

10억 원이면 1천만 원에 채권을 매입해 없앨 수 있으니

서울시가 책임질 5억 원의 매입금 5백만 원은 서울 팬이 낸 입장료 수입에서 기부해달라는 겁니다.

 

간단히 말하면 10억 원을 탕감하기 위해 실제는 1천만 원이 필요하니

경기를 통해 이 돈을 만들어 악성 채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제해주자는 거죠.

 

 

실제 필요한 돈이 1천만 원이었음에도 10억이라는 돈을 제시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한 시장의 아이디어가 참 신선합니다.

 

아울러 이 돈의 어마어마한 차이를 사람들에게 알게 함으로써

채무자들이 어떤 고통 속에 있을지 공감하게 하는 데도 10억이란 숫자는 참 효과적이었죠.

 

이런 제안을 두고 SNS상에서는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양팀 골키퍼는 골을 먹을수록 장기연체자들의 영웅이 될 것"이라고 한 반면,

 

"장기 연체자 채무를 사서 빚 탕감을 해준다는 것은 성실히 빚을 갚고 있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

이라고 비판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벼랑 끝 삶에 건네는 손

 

 

 

이 축구게임이 제 관심을 끈 건 바로 한국형 자활 프로그램의 대중적 확산이라는 아이디어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부릴리은행이란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이 은행은 장기 연체된 부실채권을 사들여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올해 설립된 기관입니다.

 

 

주빌리라는 이름은 우리보다 앞서 2012년 미국에서 진행한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프로젝트'에서 따온 거죠.

 

이 운동은 그 당시 미국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Occupy Wall Street(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캠페인의 일환으로

155억 원어치의 부실 채권을 매입해 탕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롤링 주빌리는 일정 기간을 정해 빚을 탕감해주던 성경의 한 용어를 차용한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빚을 진 사람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시민단체와 지방단체 등이 주축이 된 시민사회운동입니다.

 

 

모든 채무자가 빚 탕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잠깐 생각해봐도 흔히 말하는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활 프로젝트는 생계형 부채가 대상입니다.

 

리어카라도 장만해 노점상을 꾸려나가 볼 생각으로 1천만 원을 대출받은 사람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은행에 원금을 갚지 못해 10년 동안 독촉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이 채권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은행이 그 사람의 실제 재정 상황과 경제 여건을 감안해

악성 채무자로 분류가 될 겁니다.

 

돈 받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아주 작다고 판단하는 거죠.

 

이럴 경우 그 채권은 다른 금융기관에 원금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됩니다.

 

1천만 원짜리가 5백만 원이 되는 거죠.

 

이걸 사들인 업체들은 위험은 크지만 원금을 받아낼 수만 있다면

두 배에 가까운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위험은 감수한다는 거죠.

 

 

그러나 이 금융사도 돈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면

대부업체에게 훨씬 싼 가격으로 채권을 팔아넘깁니다.

 

여기서도 원금 환수가 불가능하면 악독한 사채업체에게 채권을 넘길 테고요.

 

그러는 사이에 원금의 백분의 일에 해당하는 채권의 '시장가격'이 형성되면

정말 악질적인 사채업자가 이 채권을 인수해 본격적인 '100% 원금회수작전'에 돌입합니다.

 

조폭영화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인정사정 안 봐주는 막가파식 채권 추심이 시작되는 거죠.

 

더욱 불행한 사실은 이렇게 자신의 빚이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것을

빚을 진 당사자는 알 수 없다는 거죠.

 

 

 

 

 

 

 

 

원금의 7%만 갚으면 채무 탕감

 

 

 

이런 상황을 한 십 년쯤 겪으면 그 사람의 삶은 아마 엉망이 될 겁니다.

 

정상적으로 취직도 못하고, 사회활동도 제한받는다면

돈 1천만 원에 십년의 세월과 자유를 스스로 저당 잡힐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자활프로그램은 적용됩니다.

 

특히 자활의 의지, 다시 말해 정말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대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도덕적 해이는 이 경우 해당사항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마 합리적 생각이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에게 주빌리은행은 자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지요.

 

 

휴지나 다름없어진 채권을 대부업자들에게 원금의 1%쯤 되는 가격으로

주빌리은행이 사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할 겁니다.

 

"우리가 당신의 자활을 돕겠다. 그러니 당신은 좀 더 노력해서 원금의 7%만 갚아라.

만약 사들인 채권 값보다 당신이 갚은 7%의 원금이 초과할 경우는 남은 돈으로

다른 고통 받는 사람들의 채권을 사들이는 데 쓸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채무 탕감의 필요성이 잘 드러나는 한 가지 사례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한 채무자는 3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남긴 4천만 원이 넘는 빚을 떠 앉습니다.

 

어머니는 손을 못 쓰는 장애인이고 초등학교를 다니는 누나와 함께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된 이 채무자는 아버지가 남긴 카드빚을 갚으라는 빚 독촉에

7년간이나 실달리다 주변의 도움으로 법원에 파산면책을 신청하게 됩니다.

 

이런 채무자의 채권을 주빌리은행이 사들여 채무를 탕감해주는 것이지요.

 

 

이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삶을 새로운 희망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로서는 이들에게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도록 지원함으로써

세금도 낼 수 있는 삶을 시작하게 해 선순환의 물꼬를 트게 해주는 것이지요.

 

일석이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 아닐까요.

 

 

 

 

평화를 위한 또 다른 길

 

 

 

생각을 잠시 돌려보도록 하죠.

 

흔히 노벨평화상은 세계 평화를 지키거나 평화를 이룰 가능성에 대해

혁혁한 공적을 세운 인물이나 기관을 대상으로 수여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전제가 맞다면 평화상은 인류를 전쟁의 위협으로 부터 구하거나 전쟁이 끝나는 데에 기여하는 등

비폭력에 대한 인류의 지지와 성원을 표현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깬 일이 있었습니다.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람은 그라민은행의 총재를 맡고 있던 무함마드 유누스였습니다.

 

폭력이나 전쟁과 관련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은 인류가 평화를 지키는 데에

다른 요소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특히 그 대상이 사회적인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그라민은행의 총재였다는 사실은

빈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안전망의 파괴가

어쩌면 전쟁만큼이나 현실에서 불안정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거지요.

 

 

소외계층의 자활을 돕는 프로그램은 이미 지난 1976년에 시작된 바 있습니다.

 

무담보 소액대출을 뜻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 credit)는

영세민의 자활을 돕기 위해 자금과 사회기회를 마련하는 대출사업입니다.

 

방글라데시에 마이크로크레디트 전담 은행인 그라민은행이 설립되면서 이 사업은 첫 깃발을 올립니다.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간 후

미국이나 프랑스 등의 선진국에서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중이지요.

 

 

 

 

신뢰를 자본으로 하는 은행

 

 

 

그라민은행의 영업 방침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대출로 인해 얻는 수익보다는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원칙을 통해

대출 금리가 대출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다음으로 대출을 받는 대상은 노동 능력과 자활 의지가 확고한

농촌과 도시 지역의 빈민층으로 한정한다는 것이죠.

 

특히 여성에 대한 대출이 더 많다는 사실은

남성에게 대출을 할 때보다 가족 전체에 헤택을 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근거로 합니다.

 

아울러 대출자의 신용이 쌓일 때에만 추가대출이나 예금 가입 등의 다른 혜택을 준다는 점입니다.

 

 

주목해서 보아야 할 점은 대출을 받은 사람이 돈을 갚지 않는다고

월급을 압류하거나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꽤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대출자들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행의 경영실적이 나쁘지 않다는 점은

사회가 자활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왜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은행의 영업 지침은 '훈련, 단합, 용기, 근면' 이 네 가지라고 합니다.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이 없지만 실천하기에는 참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쉬울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막상 제도를 마련하고 실천해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 참 비슷하네요.

 

 

주빌리은행에서 그라민은행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에 이런 은행들이 생겨 월스트리트처럼 닉네임을 얻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다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를

벽으로 가로막는 거리(Wall Street)같은 이름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평화의 거리, 피스 스트리트(Peace Street)같은 이름은 어떨까요?

 

 

글 ㅣ 오형석

 

 

 

- 2016.07 ㅣ Vol.14 상상공감 카페人 -

 

 

반응형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