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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젊은일꾼 2016. 8. 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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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딸기 Strawberry]

 

 

 

<via pixabay>

 

 

식탁에 놓인 조그만 박스를 열며 아내에게 물었다.

웬 딸기잼? 친구에게 받은 선물이란다.

뚜껑에는 '6월 24일' 잼을 만든 날짜가 적혀 있다.

만든 이의 마음 씀씀이가 살갑다.

식빵에 발라 먹으니 꿀맛이다.

 

 

지금도 또렷한 맛의 기억은 딸기잼을 바른 식빵이다.

매년 6월이면 어머니는 딸기잼을 만들었다.

딸기가 제철이었고 쌌다.

은근한 불에 졸여지는 딸기잼 향은 대문 밖까지 퍼졌다.

끈적거리는 향긋함이랄까.

그 냄새를 맡으면 입 꼬리가 위로 올랐다.

빵에 바른 잼의 두께를 두고 동생과 싸우는 일도 많았다.

야, 한 숟가락만 발라. 형도 두 숟가락 발랐잖아!

병에 담긴 딸기잼이 바닥을 드러내면 병 속에 식빵을 우겨넣고 잼을 말끔히 닦아냈다.

희미하게 잼이 뭍은 식빵을 마지막으로 그해 '딸기잼 축제'는 끝났다.

 

 

 

200년 전 인공교배로 탄생

 

 

 딸기(Strawberry)는 가을에 모종으로 심는다.

겨울을 나고 이듬해 5월경부터 6월초까지 수확한다.

겨울에 잎이 시들어버리지만, 봄이 되면 신기하개 새잎과 꽃을 피운다.

딸기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초여름이 되면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고 후손을 키워낸다.

줄기가 계속 자라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땅에 뿌리를 내린다.

뿌리가 내린 부분을 잘라 심으면 이듬해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딸기는 대를 잇는다.

 

 

열매채소인 딸기는 자연산이 아니라 인공교배의 결과물이다.

1764년 영국 식물학자 필립 밀러가 칠레 야생딸기와

북미 버지니아 야생딸기를 교배시켜 새로운 종자를 만들어냈다.

재배용 딸기의 시작이다.

이후 19세기 초에 대량 재배가 이뤄진다.

지금의 딸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지는 200년 정도에 불과하다.

칠레 야생딸기를 유럽에 전파한 사람은 프랑스 육군 장교였다.

정보국 소속 아메데 프랑수와 프레지에 중령은 1711년 스파이로 칠레에 파견되었다.

 

 

 

"그가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칠레의 야생딸기 관련 기록은,

딸기에 관한 기록인 동시에 군사정보를 적은 암호였다.

칠레 해안가에 설치된 요새와 주둔 병력, 대포의 수와 병참공급 현황 같은 군사정보는 물론이고,

독립 전 칠레를 통치했던 스페인 총독의 근황과 원주민의 움직임까지 정치, 경제, 사회와 관련한 모든 정보가 함께 적혀 있었다."

 

- 나무위키 https://namu.wiki -

 

 

 

우리나라에 딸기가 전해진 것은 1920년대로 추정된다.

1940년 수원고등농림학교에서 육성한 '대학1호'가 최초 국내품종이다.

1943년 밀양시 삼랑진읍이 첫 시배지로 알려져 있다.

밀양시는 이를 기념해 매년 4월 '삼랑진 딸기 한마당 대축제'를 연다.

논산도 대표적인 딸기 재배지이다.

1994년 논산딸기시험장이 설립되었다.

논산시 역시 4월 딸기축제를 연다.

 

 

 

<영국 리버풀에 있는 구세군 고아원, 스트로베리필드(Strawberry Field) 정문.

2005년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비틀즈 팬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by Loco Steve, flicker(CC BY-SA)>

 

 

 

딸기밭에서 보낸 '청춘의 봄'

 

 

어느해 4월 중순쯤이었다.

중간고사를 끝내고 대학 후배들과 수원에 있는 딸기밭으로 소풍을 갔다.

입장료를 내면, 가겨가진 못해도 양껏 딸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산딸기는 가끔 봤지만 딸기가 주렁주렁 달린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길게 뻗은 이랑 위에 점점이 빨간색이 찍혀있었다.

옆구리에 낀 바구니는 금세 딸기로 채워졌다.

원두막에 둘러앉아 바구니에 담긴 수확물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설탕에 찍어먹었지만 그날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달았다.

가져간 막걸리도 달았다.

술 한 모금에 딸기 한 개, 그렇게 배를 채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진동하던 딸기 향기는 해가 저물자 더욱 진해졌다.

바람은 살랑살랑, 별은 반짝반짝, 딸기처럼 불콰해진 얼굴들...

모든 게 향기로웠다.

아름다웠던 '청춘의 봄'이었다.

딸기맛보다 손끝에 남았던 딸기향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딸기밭을 영어로 옮기면 스트로베리 필드(Strawberry Field).

스트로베리를 검색해보면 미국에 이를 지명으로 딴 곳이 여럿 보인다.

우리로 치면 '딸기골'이다.

뉴욕 맨하튼 센트럴파그에는 '스트로베리 필즈(Strawberry Fields)'라는 곳도 있다.

1980년 12월 8일 괴한에 살해당한 존 레논을 기리기 위해

1985년 10월 9일 그의 45번째 생일에 문을 연 추모공간이다.

이름은 존 레논의 노래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Strawberry Fields Forever)'에서 따왔다.

그의 아내 오노 요코가 사비를 들여 조성했다.

맞은편엔 부부가 거주했던 다코타 아파트(Dakota Apartments)가 있다.

타일로 장식된 바닥엔 그의 대표작 'Imagine(이매진)'이 선명하다.

매년 그의 생일, 피격일에는 수많은 팬들이 이곳에 모여 그의 노래를 부른다.

 

 

평상시에도 이곳은 버스커(거리음악가)의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인기 관광코스이기도 한 이곳은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버스커들 간 자리다툼이 심했다.

2013년에는 싸움으로 한 사람이 숨지기도 했다.

평화를 염원하는 '이매진' 가사처럼 이곳에 다툼이 사라지게 한 건 어느 50대 버스커 덕이었다.

"다른 곳으로 가서 싸워라. 여기는 아이들도 찾아오는 연소자 관람공간이다"며 싸움을 말렸고,

공연순서를 정하는 일을 도맡았다.

싸움은 사라졌고 노래만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당신을 데려가고 싶어요. Let me take you down,

난 스트로베리 필즈로 갈 거니까. Because I'm going to Strawberry Fields.

거기에 현실은 없어요. Nothing is real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어요. and nothing to get hung about.

스트로베리 필즈여, 영원히. Strawberry Fields forever.

 

- 비틀즈 시집(강서일 번역),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

 

 

 

'소중한 당신, 그곳에 함께 가요'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는 레논이 유소년기를 보낸

영국 리버풀의 스트로베리 필드를 떠올리며 만든 노래이다.

 

 

스트로베리 필드는 구세군에서 운영한 고아원 이름이었다.

어렸을 적 이혼한 부모와 떨어져 이모랑 살던 존 레논은 그곳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와 친구들의 놀이터였고 아지트였다.

이모는 비틀즈 전기 작가 헌터 데이비스의 입을 밀려 당신의 존을 전한다.

"구세군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면, 존은 벌떡 일어나 외치곤 했어요. 이모, 이러다 늦겠어."

아이는 밴드 음악에 심취하고 딸기밭에서 상상력을 키웠다.

훗날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비틀즈는 이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던 셈이다.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는 1966년에 만들어졌고,

이듬해인 1967년 '페니 레인(penny Lane)'과 함께 싱글앨범으로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20세기 가장 뛰어난 싱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고아 아닌 고아로 유소년기를 보낸 레논에게 스트로베리 필드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였고 마음의 고향이었다.

성인으로 성장해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었어도 그곳은 언제나 마음 한쪽에 자리 잡았다.

부모가 곁에 없어 외로웠지만 빈자리를 채운 건 나무, 풀, 하늘, 그리고 구세군 밴드의 음악소리였다.

봄이면 향긋한 딸기 향을 맡았을 것이다.

풀이 우거진 아지트에서 홀로 누워 하늘을 보기도 했겠지.

소중한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곳, 그곳에 함께 가자고 노래했다.

 

 

내 나무 속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No one I think is in my tree,

그것은 높거나 낮아야 해요. I mean it must be high or low.

당신이 그것을 다 맞출 수는 없어요. That is you can't you know tune in

하지만 다 괜찮아 but it's all right,

그렇게 아주 나쁘지는 않아요. that is I think it's not too bad.

 

 

 

이 부분에선 사회적인 기준에 맞추기 보다는 나만의 길을 가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그런 당당함이 불후의 명곡을 만들어냈다.

스타 뮤지션에 안주하지 않고 반전평화운동가로 나선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으리라.

'나만의 것'을 지키려는 자존심이었다.

 

 

 

한 편의 시이기도 한 이 노래는 다른 문학가들의 소재로 자주 이용되기도 한다.

소설가 박민규는 이렇게 해석했다.

"아무도 나의 나무에 오지 않아요/ 나무가 아주 높거나 낮아야 했나 봐요/ 당신과 조를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그리 나쁘다고 생각지 않아요./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요? 난 딸기밭에 가는 중이에요./ 실감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머뭇거릴 일도 없죠/ 딸기밭이여, 영원하리"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예담. 2009 -

 

 

 

 

<뉴욕 센트럴파크의 존 레논 추모공간인 스트로베리 필즈(Strawberry Fields). via pixabay>

 

 

 

대만 '딸기세대'의 반격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요한이라는 인물이

'나'에게 하는 말은 자아를 갖지 못한 인간들에게 향한 실랄한 비판이다.

 

 

"인간은 대부부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自我)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띁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끝없이 오래 살려고 하고..."

 

 

자아가 없으면 열등감만 남을 뿐이다.

평생 그 열등감을 없애려 에너지를 소진 하지만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보잘것 없는 인생이다.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알아?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 거지. 안 그래도 다들 시시하게 보는데 자신이 더욱 시시해진다 생각을 하는 거라고. 실은 그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 말이야. 보잘것 없는 여자일수록 가난한 남자를 무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구."

 

 

2016년 1월 민진당의 압승으로 끝난 대만의 총통선거는 '딸기세대'의 반격으로 평가된다.

딸기세대는 1981년 이후 출생한 젊은이의 별칭으로 정치에 무관심하고 딸기처럼 연약하고 무르다는,

비하의 뜻이다.

그러나 대만 '딸기들'은 단단했고, 8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끈 주역이 되었다.

세상은 개개인의 빛이 모여 밝아질 수 있다는 걸 딸기세대는 경험했다.

나만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봐주고 불을 밝혔다.

그들은 '보잘 것 있는' 세대가 되었다.

 

 

 

 

딸기주스 한 잔을 시켰다.

부드럽게 넘어가고 입 안 가득 향기가 퍼진다.

작은 씨앗들이 입속에 남았다.

딸기 하나에 붙은 씨가 200개 정도라고 한다.

이 씨도 싹을 튀울까. 확률은 낮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모종으로 자라면 자손을 퍼트릴 테지.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글 ㅣ 손인수

 

 

 

<딸기 건강백서>

 

 

딸기는 천연 비타민의 보고로 불린다.

100g중 비타민C가 80~90mg로 귤의 35mg보다 3배정도 많다.

하루 6, 7개만으로도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C를 섭취할 수 있다.

함유된 안토시아닌이 항암작용을,

식이섬유인 펙틴(식물성 섬유질의 일종)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현저히 낮춰준다.

눈 피로 회복에도 효과적이다.

밤늦도록 공부하는 학생이나 컴퓨터 작업으로 눈이 자주 피로한 사람에게 좋다.

 

 

 

* 출처 *

 

- 2016. 07 Vol.14 상상공감 카페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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